가끔 우연히 본 영상 하나가
오래전 기억을 콕 찔러 올릴 때가 있다.
며칠 전,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옛날 커피빵 만들기”라는 제목의 영상이 바로 그랬다.
썸네일만 봐도 구수한 커피 향이 코끝에 맴도는 듯했고,
무엇보다 그 빵집 커피빵이 떠올라 심장이 살짝 뛰었다.
아주 오래전, 학생 때 용돈을 아껴가며
종종 사 먹던 그 커피빵.
부드럽고 고소하면서도 은은하게 퍼지던 커피 향…
한 입 베어 물면 따뜻함이 퍼지던 그 기억이
어느새 부엌으로 날 이끌었다.
📋 나름 정성 가득했던 시도
이번엔 다른 베이킹 때보다도
좀 더 정확한 계량과 순서에 신경을 썼다.
커피 액은 인스턴트로 대충 때우지 않고,
옆지기에게 에스프레소를 뽑아달라고 부탁했다.
아침부터 주방엔 고소한 커피 향이 감돌고,
내 마음은 벌써 ‘성공한 향수 제조자’가 된 듯했지.
반죽은 부풀었고,
오븐에 들어간 커피빵은 30분 동안
점점 더 빵다운 모습을 갖춰갔다.
겉보기엔 꽤 그럴싸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겉면, 커피향이 가득 찬 집안,
그리고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
😐 그럼 그렇지... 망했다
하지만, 모든 건 ‘겉’ 이야기였지.
빵을 식힌 후 칼을 대는 순간...
이질적인 손맛.
속이 텅 빈 것도, 꽉 찬 것도 아닌…
그 애매한 저항감에서 이미 감이 왔다.
"아... 망했구나."
한 입 먹어보기도 전에 이미 실망이 밀려왔고,
예전 그 빵집 커피빵의 촉촉함도, 부드러움도,
어릴 적 감성도 그 안엔 없었다.
그저 커피향이 나는 뻣뻣한 빵덩어리 하나.
🎭 대망의 시식단, 옆지기 등장
나는 그대로 포기하고,
그 빵을 옆지기에게 건넸다.
"모두가 입을 모아 얘기하는 만불짜리 입"을 가진 사람에게.
내겐 도저히 엄두가 안 났거든.
🍞 백만 불짜리 입도 외면한 그 빵
옆지기에게 빵을 건네고는
나도 이것저것 바빠져서 커피빵의 존재를 잠시 잊고 있었다.
그날 하루, 옆지기도 별다른 말이 없길래
그래도 한 조각쯤은 먹었겠지 싶었는데…
다음날 아침.
문득 생각나서 빵 보관 주머니를 열어보는데—
어제 내가 건넸던 그 빵이,
그대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거기 있는 거야.
순간, 정적.
"이걸 고대로 다시 넣어놨다고…?"
귀퉁이를 살짝 베어 먹은 흔적만 남아 있었고,
나머지는 마치 ‘먹은 적 없음’을 증명하듯
그 상태 그대로 고이 안겨 있었다.
🥲 내 손으로 판 커피빵의 운명
속으로 생각했지.
‘백만 불짜리 입’도 거부한 커피빵이라니…
대체 얼마나 맛이 없었길래.
하지만 이왕 만든 거, 차마 버릴 순 없었다.
그래서 달달한 커피 한 잔을 곁들여
내가 천천히, 아주 소심하게 먹어보기로 했다.
조그만 조각을 떼어 입에 넣는 순간—
목이 ‘턱’ 막히는 그 느낌.
어이없는 빵맛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진짜 아무 맛도 안 나는,
그냥 커피 향만 머금은 뻣뻣한 뭔가.
그제야 확실히 알게 됐지.
이건 달달한 커피 없이는 도저히 삼킬 수 없는 빵이라는 걸.
그렇게 커피빵은
‘아련한 추억’이 아닌
‘좀 웃긴 흑역사’로 남게 되었고,
나는 또 다른 레시피를 찾아보며
다음 도전을 은근슬쩍 준비 중이다.
이번엔 꼭…
진짜 그 옛날 커피빵의 맛에 닿아보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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