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을 기다렸다.
히드로 공항에서의 연기는 사라졌고,
다시 짐을 싸 들고 터미널로 향하던 날은
날씨도 유난히 맑았다.
하지만 한 번 겪은 연착은
비행기 타기 전까지도 마음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조금 일찍 도착한 2터미널,
익숙하지만 왠지 낯선 풍경.
출국장은 여전히 붐볐고,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로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면세점은 여전히 반짝인다
체크인을 마치고,
보안 검색대를 지나 걷다 보면
면세점이 시작된다.
히드로 2터미널은 면세 매장이 넓기로 유명한데,
Jo Malone, Fortnum & Mason, WHSmith, 그리고 Harrods까지.
사실 사고 후 재예약된 비행기였기에,
쇼핑 욕구보단 그냥 ‘걸으며 기다린다’는 감각에 가까웠다.
스쳐지나가듯 Harrods를 둘러보고, 사진은 없지만 Jo Malone의 신제품 시향을 잠깐 해보고, Fortnum & Mason 코너에서 홍차 티백을 몇 개 고르다 보니
조금은 마음이 가라앉았다.
출국 직전, 작은 소비는 일종의 의식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공항 음식은 기대를 버리면 맛있다
탑승 게이트가 열리기 전까지 시간이 남아
간단히 요기를 하기로 했다.
히드로 공항 안에는 Leon, Costa, Wagamama 같은
익숙한 체인점들이 있다.
단골 카페 Costa 에서 새우마요 샌드위치와 기본 햄앤 치즈 토스티, 그리고 푸른빛의 스피루리나 스무디를 주문했다.
기대 없이 먹으면 늘 괜찮은 맛.
가격은 여전히 비싸지만,
공항이라는 공간 안에서는 모든 감각이 조금 둔해진다.
드디어 탑승 — 비행기 안에서 본 조용한 감정들
비행기 안에 들어서자
3일 동안의 피로와 걱정이
일순간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창밖을 바라봤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륙 전의 고요한 긴장감.
출발 직후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런던의 도시 불빛이
내려가는 빛과 함께 작아졌다.
드디어, 한국으로 간다.
⸻
기내식 — 늘 익숙하지만 은근히 기다려지는
첫 번째 기내식은 비빔밥과 된장국, 그리고 초코 머핀이 나온 한식 옵션을 골랐다.
대한항공에선 늘 비빔밥을 선택하곤 했는데,
이번엔 입맛이 바뀐 건지,
아니면 예전 기억이 괜히 미화됐던 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맛이 썩 인상적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받는 기내식이라는 사실이 반가워서인지
어느새 한 그릇을 다 비우고 있었다.
우리 딸은 입맛이 영국인 쪽이라
이번에도 어김없이 양식 옵션을 골랐다.
매쉬드 포테이토에 치킨, 거기에 빵과 치즈까지.
익숙하고 편안한 조합이 딱 그녀 스타일이다.
식사 후 디저트로는
작은 조각 케이크와 녹차 한 잔.
먹는 동안은 그저 이동 중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두 번째 기내식은 도착 2시간 전쯤 나왔는데,
크로아상과 애플파이, 과일 컵이 포함된 간단한 아침식 메뉴였다.
기내식은 맛보다는 루틴에 가까운 시간.
한 입, 한 입에 ‘도착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장시간 비행의 지루함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컸던 건
‘곧 도착한다’는 실감과
‘이제 진짜 한국에 간다’는 감정이었다.
비행기 창밖 어둠 너머로
익숙하지만 오래 낯설었던 나라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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